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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은/허연 외

밝은여명 2022. 7. 21. 00:13

 

내가 앉은 2층 창으로 지하철 공사 5-24

공구 건설현장이 보였고 전화는 오지 않았다

몰인격한 내가 몰인격한 당신을 기다린다는 것

당신을 테두리 안에 집어넣으려 한다는 것

 

창문이 흔들릴때마다 나는 내 인생에 반기를

들고있는것을 생각했다

불행의 냄새가 나는 것들

하지만 죽지않을 정도로만 나를 붙들고 있는 것들

 

합성인간의 그것처럼 내 사랑은 내 입맛은

어젯 밤엔 죽도록 사랑하고

오늘 아침엔 죽이고 싶도록 미워지는것

살기 같은 것 팔 하나 다리하나 없이

지겹도록 솟구치는 것

불온한 검은피,내 사랑은 천국이 아닐 것

 

내사랑은/허연

 

 

 

누가 다정하면 죽을 것 같다

 

장미꽃나무 너무 다정할때 그러하듯이

저녁일몰 유독 다정할때 유독 그러하듯이

 

뭘 잘못했는지

다정이 나를 죽일 것만 같았다

 

다정이 나를/김경미

 

 

 

집으로 돌아가기싫어

가급적 아주 먼길을 돌아가 본 적 있었는지

 

그렇게 도착한 집 앞을

내 집 아닌듯 그냥 지나쳐 본 적 있는지

 

길은 마음을 잃어

그런 날은 내가 내가아닌 것

바람이 불었는지 비가 내렸는지

 

꽃 핀 날이었는지

검불들이 아무렇게나 거리를 뒹굴고 있었는지

 

마음을 다 놓쳐버린 길 위에서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날

숨 쉬는 것조차 성가신날

 

흐린 달빛 아래였는지

붉은 가로등 아래였는지

 

훔치지 않은 눈물이 발등위로 떨어지고

그 사이 다시 집 앞을 지나치고

당신도 그런날 있었는지

 

그런 날 있었는지/김명기

 

 

 

문을 열자 더운기운이 훅 끼쳤다

나는 밖에서 "참 따뜻하네요" 했고 동시에

여자는 안에서 "상쾌한 공기가 들어오네요" 했다

거기 잠깐 눈웃음 머물고

 

사랑은 늘 그랬다

완전히 다른말이면서도 같은

동행

 

만나야 할 이유도

헤어져야 할 이유도

늘 함께하는

동시였다

 

내가 너를 향하고 있는 내내

 

사랑은/오철수

 

 

 

굳은 채 남겨진 살이있다.상스러웠다는 흔적.

살기 위해 모양을 포기한 곳.

유독 몸의 몇군데 지나치게 상스러운 부분이 있다.

먹고 살려고 상스러워졌던 곳.

포기도 못했고 가꾸지도 못했던 곳이있다.

몸의 몇군데 흉터라면 차라리 지나간 일이지만,

끝나지도 않은 진행형의 상스러움이 있다.

치열했으나 보여주기 싫은 곳.

밥벌이와 동선이 그대로 남은 곳.

절색의 여인도 상스러움 앞에선 운다.

사투리로 운다.

살은 굳었고 나는 오늘 상스럽다.

사랑했었다.상스럽게.

 

살은 굳었고 나는 상스럽다/허연

 

 

내가 만약 달이 된다면 그 사람의 창가에도 몇줄기는 내리겠지

 

첫사랑/김소월

 

 

 

나는 처음 당신의 말을 사랑하였지

당신의 물빛 웃음을 사랑하였고

당신의 아름다움을 사랑하였지

 

당신을 기다리고 섰으면

강 끝에서 나무잎 냄새가 밀려오고

바람이 조금만 빨리와도

 

내 몸은 나무잎 소리를 내며 떨렸었지

몇차례 겨울이오고 여름이 가는동안

 

우리도 남들처럼 아이들이 크고

여름 숲은 깊었는데

뜻밖에 어둡고 큰 강물 밀리어넘쳐

다가갈 수 없는 큰물 너머로

영영 갈라져 버린 뒤론

당신으로 인한 가슴아픔과 쓰라림을 사랑하였지

눈물 한방울까지 사랑하였지

 

우린 서로 나누어 가져야 할 깊은 고통도 사랑하였고

당신으로 인한 비어있음과

길고도 오랜 가시밭길도 사랑하게 되었지

 

사랑의길/도종환

 

 

 

별을 보고있으면

어둠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잖아요

별이 아름답구나,그 생각부터 하게 되니까.

 

우리,그렇게 사랑해요.

 

그래도,사랑 中/정현주

 

 

 

사랑이 어떻게 오는지

나는 잊었다

노동과 휴식을 바느질하듯 촘촘이 이어붙인 24시간을,
내게 남겨진 하루하루를 건조한 직설법으로 살며
꿈꾸는 자의 은유를 사치라 여겼다
고목에 매달린 늙은 매미의 마지막 울음도
생활에 바쁜 귀는 쓸어담지 못했다
여름이 가도록 무심코 눈에 밟힌 신록이 얼마나 시리도록 청청한지,
눈을 뜨고도 나는 보지 못했다
유리병 안에서 허망하게 시드는 꽃들을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의식주에 충실한 짐승으로
노래를 잊고 낭만을 지우고
심심한 밤에도 일기를 쓰지 않았다

어느날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나
비스듬히 쳐다볼 때까지

 

어느새/최영미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사랑한다는 말을 안합니다

아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 사랑의 진실입니다

 

잊어버려야 하겠다는 말은

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정말 잊고 싶을 때는 말이 없습니다

 

헤어질 때 돌아보지 않는 것은

너무 헤어지기 싫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같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웃는 것은

그만큼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떠날 때 울면 잊지 못하는 증거요

뛰다가 가로등에 기대어 울면

오로지 당신만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잠시라도 같이 있음을 기뻐하고

애처롭기까지만 한 사랑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주기만 하는 사랑이라 지치지 말고

더 많이 줄 수 없음을 아파하고

 

남과 함께 즐거워한다고 질투하지 않고

그의 기쁨이라 여겨 함께 기뻐할 줄 알고

 

깨끗한 사랑으로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나 당신을 그렇게 사랑합니다

 

나 그렇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 그렇게 당신을 사랑합니다/한용운

 

 

 

비는 싫지만 소나기는 좋다

인간은 싫지만 너만은 좋다

내가 새라면 너에게 하늘을 주고

내가 꽃이라면 너에게 향기를 주겠다

하지만 나는 인간이기에 너에게 사랑을 준다

 

너에게 띄우는 글/이해인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

불빛도 산 그림자도 잃어버렸다

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 뿐

아무것도 아무것도 품지않는다

헛되이 던진 돌멩이들,

새떼 대신 메아리만 쩡쩡 날아오른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

 

천장호에서/나희덕

 

 

 

가슴속을 누가 쓸쓸하게 걸어가고 있다 

보이지 않을 듯 보이지 않을 듯 소리없이

가슴속 벌판을 쓸쓸하게 걸어가는 너는 누구니

형광등 불빛은 너무나 하얗게 저 혼자 빛나고

오늘도 우리는 오늘만큼 낡아버렸구나

 

가슴속을 누가 자꾸 걸어가고 있다

보이지 않을 듯 보이지 않을 듯 소리없이

가슴속 벌판을 또는

멀리 뻗은 길을

쓸쓸하게

하염없이

걸어가는

너 누구니? 너 누구니?

누구니 너? 우리 뭐니?

뭐니 우리? 도대체

 

너누구니/홍영철

 

 

 

한 사람을 알고부터 내 스스로가 선택한 가장 아름다운 고통이다

 

짝사랑/김병훈

 

 

 

먹지는 못하고 바라만 보다가

바라만 보며 향기만 맡다

충치처럼 꺼멓게 썩어 버리는

그런 첫사랑이 내게도 있었지

 

모과/서안나

 

 

 

나는 가진 것보다

가지지 않은 것을 버립니다

 

나는 몸에 붙어 살찐 것보다

살찔 것들을 씻습니다

 

나는 걸레로 닦은 것보다

걸레에 묻어날 먼지들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귀로 소리를 소화시키기보다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유인합니다

 

붙들리는 것을 금하였으므로

길 건너를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내가 사랑입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나는 몇 평입니까

 

물었습니다

나는 얼마입니까

 

물었습니다 

이제 나는 가까이 있습니까



사랑/이병률

 

 

 

내 전생에 너를 얼마나 울렸기에 한평생 날 붙들고 잠 못자게 하는가

 

짝사랑/임보

 

 

 

모래알 하나를 보고도 

너를 생각했지 

풀잎 하나를 보고도 

너를 생각했지 

너를 생각하게 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없어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너를생각하는것이나의일생이었지/정채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