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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살이/김광규
밝은여명
2022. 8. 25. 19:07
◈겨우살이/김광규
가야산 산길 걸어 해인사 가는 길목
앙상하게 잎이 진 굴참나무 가지에
때 아닌 푸른 잎이 한 무더기 나 있기에
나무가 미쳐서 때도 모르고
겨울에도 새 잎이 돋았다고 말했더니
같이 가던 누군가가 말을 가로채
한겨울에 새 잎이 날 리는 만무하고
숙주식물의 껍질을 파고들어
못난 듯 얹혀사는 식물이지만
겨우살이라고 하는 귀한 약재로써
거저 살다 가는 것은 결코 아니란다
얹혀서 산다는 것,
언뜻 생각하면 못난 일 같지만
얹혀살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바람 위에 구름이 얹혀서 살고
꽃 속에 벌 나비가 얹혀서 살고
사람 속에 우리 또한 얹혀 살아가느니
겨우살이처럼 살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못나지 않은 것이 어디 있으랴
- 김광규 <겨우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