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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의 계절 가을 (대치성당 조영대 신부)

밝은여명 2022. 9. 2. 09:44

◈비움의 계절 가을 (대치성당 조영대 신부)

어느새 가을이 다가왔습니다. 조석으로 쌀쌀해졌습니다. 그 푸르던 산과 들의 색깔이 조금씩 변해가고 바람에 가을이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뒹구는 낙엽들이 발에 부딪히며 크게는 인생의 끝을, 작게는 한 해를 잘 마무리하라고 일깨워줍니다.  가을의 문턱에서 날리는 낙엽이 시인 이채님의 ‘추억 소환’이라는 시를 떠올리게 합니다. 

(축약) 인생 칠십이면 가히 무심이로다. 흐르는 물은 내 세월 같고, 부는 바람은 내 마음 같고, 저무는 해는 내 모습 같으니~~ 어찌 늙어 보지 않고 늙음을 말하는가. 한 세상 왔다 가는 나그네여, 가져갈 수 없는 짐에 미련을 두지 마오. 빈 몸으로 와서 빈 몸으로 떠나가는 인생 무겁기도 하건만 그대는 무엇이 아까워 힘겹게 이고 지고 안고 사시나요? 발가벗은 몸으로 세상에 나와서 한 세상 사는 동안 이것저것 걸쳐 입고 세상 구경 잘했으면 만족하게 살았지요. 무슨 염치로 세상 모든 것을 가져가려 합니까. 어차피 떠나가야 하는 길이 보이면 그 무거운 짐일랑 다 벗어 던져 버리고 처음 왔던 그 모습으로 편히 떠나보내시구려.

사람들이 정말 몰라서일까요? 왜 그리들 욕심내고 아웅다웅 살까 싶습니다. 그리도 올라서려 하고 더 가지려 하고 심지어 속이고 빼앗으며 부당하게 남을 해치기까지 하는 군상들을 보며 한숨이 절로 납니다.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니고, 80, 90이면 결국 늙고 병들어 사라져갈 것을, 왜 그리도 어리석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을까요? 흐르는 물처럼 세월은 야속이 흘러가고, 저무는 해처럼 우리네 인생도 저물어가는 것을, 나그네와 같은 인생살이, 미련 두지 말고, 빈 몸, 빈 몸으로 왔으니 빈 몸, 빈 손으로 떠날 것을 잊지 말고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기보다 자신의 영달을 먼저 생각하는 정치인들의 뻔뻔한 모습들 하며, 소유의 노예가 되어 가난한 이들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가진자들의 부덕한 모습들 하며... 수백 년 이고지고 갈 수 없는 것을, 하늘 두려운 줄 모르고 후안무치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보면 참으로 한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어제 뉴스에서 갓난아이를 길가 쓰레기 더미에 버린 천인공로할 내용을 접하면서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아기 엄마의 비정한 모습, 그건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산사태로 개가 새끼들과 묻혔다가 구조되는 과정에서 자기 새끼들도 구해달라고 부르짖는 장면을 보면서 사람이 개만도 못하다는 생각을 서글프게 했습니다. 어찌 인간이 점점 망가져 갈까요? 왜 인간성이 무너져갈까요? 세상은 날로 발전한다는데 인간의 심성은 점점 부패해가고 있으니 조물주의 깊은 한숨이 느껴집니다. 어찌하면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장례예절에 함께 할 때 조의만 표하지 말고 오늘의 주검에서 자신의 미래를 보면서 앞으로의 삶의 이정표로 삼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머나먼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 각자가 멋지게 살다가 멋지게 떠날 수 있는 나그네로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물론 우리 사회에는 성실하고 정직하게 욕심 없이 비우며 살아가는 분들, 늘 나누기를 좋아하고 가난하고 외로운 이웃들을 사랑으로 돌보며 살아가는 등대 같은 분들도 많습니다. 그분들을 보노라면 마음이 훈훈해지고 희망을 느낍니다. 남들이 그렇게 살아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희망이 되는 삶을 살아가기로 다짐합시다. 

 

거리에 뒹구는 낙엽의 길에서 비움을 묵상하면서 오늘도 묵주기도로 나의 마음과 사람들의 마음을 위해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