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떠나는 가을여행…“추억 돋네∼”
◈친구들과 떠나는 가을여행…“추억 돋네∼”
[미디어세상=신수미 기자]
인천시 서구, 이 일대를 흔히 서인천이라 부른다. 강화군을 제외한 인천 본토에서는 서쪽 지역에 해당하는 곳에 있기 때문이다. 서구는 인천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어 경기도 김포시와 경계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서구지역, 그 중에서도 서구청이 있는 연희동, 심곡동 일대를 ‘서곶’이라 부르는데, 지명처럼 해안가 갯벌을 매립한 지형으로 알려졌다.
조선시대에는 부평부 모월곶면 지역이었으며 1914년에는 부천군 서곶면에 편입되었다. 1940년에 인천부에 편입되고, 해방 이후 1968년 인천이 구제 실시로 북구가 신설되면서 인천시 북구 연희동, 1988년에 북구에서 분구된 서구에 편입되어 인천직할시 서구로, 1995년 이후로는 인천이 광역시로 승격, 김포군 검단면이 서구로 편입되면서 인천광역시 서구 연희동으로 현재에 이른다.
인천공항, 청라지구 등으로 국제도시로 탈바꿈 중이지만, 서구지역은 인천에서도 외곽에 위치하고 있어 마치 ‘등잔 밑’같기도 하다. 도시화로 변신하기 전인 지난 40여 년 전부터 이곳에서 함께 자라 온, 자칭 까칠한 친구들이 깊어가는 계절 속으로 함께 여행을 떠났다. <편집자 주>
깊어가는 가을처럼 오랜 시간 함께 한 우정도 ‘숙성’
계절 여행은 유년 시절 추억 함께 떠올라 ‘새록새록’
지난 날들에 대한 기억의 자리에는 어떤 모양이 자리하고 있을까? 때로는 아픈 기억도 삶의 한 부분이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기억 데이터베이스에서 여지없이 삭제 당한다. 즐거웠던, 혹은 미래를 꿈꾸던 일들에 대한 화사한 기억만이 저장창고에 싱싱하게 보관될 뿐이다.
사람은 아픈 기억을 애써 도려내려 하는 방어적 심리가 작동한다. 그리고 어떤 공간을 떠나면서 모든 것이 사라질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오히려 선명하게 새겨진 기억의 저편에는 굳어진 ‘옹이’도 함께 있을 뿐이다.
신기루 같은 행복을 찾아, 꿈을 찾아 먼 곳을 떠났던 수많은 여행자들이 결국 본향으로 돌아오듯 우리의 삶도 그러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의 회귀본능이기도 하다. 반드시 돌아온다는, 아니 어떤 기억들은 더 또렷하기 위해 우리는 그렇게 일탈을 꿈꾸는지도 모를 일이다.
친구들과 자연으로 '고고싱'
가을은 시골마을을 완전히 점령하고는 한다. 산과 들이 바로 지척에 있어 등하교 때마다 을씨년스런 풍경과 하나가 되곤 하니 말이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연희동을 거쳐 심곡동에 이르는 길에는 코스모스가 길가에서 자라곤 했다.
버릇처럼 길을 걸으며 코스모스에 손을 대고 스치듯, 어루만지며 지나곤 한다.
이는 자연과의 대화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그마한 꼬맹이의 손에 몸을 맡긴 코스모스의 넉넉함이기도 하다. 꽃은 그렇게 인간과 교감하기도 하지만, 이내 깊은 계절 속으로 사라질 터이다. 간혹 늦은 시간에는 붉게 물들어 떨어지는 석양이 코스모스와 어우러져 덧없는 쓸쓸함을 주기도 한다.
심곡동으로 접어드는 신작로는 계절마다 변화무쌍했다.
신작로 주변으로 자리한 밭에서는 딸기며 토마토 등이 자라곤 했다. 말썽꾸러기들이 지치게 놀고 난 뒤, 허기를 달래는 표적으로 무방비 노출되고는 했다.
집으로 들어서던 개울가에 흐르던 물은 계절마다 다르게 소리했다.
봄에는 오케스트라의 잔잔한 협연처럼 소리하다, 여름에는 한껏 몰아치는 신명나는 사물놀이 같기도 했다. 그러다 가을에는 풍족하면서 고독한 ‘비발디’를 연주하기도 했고, 깊은 겨울에는 지나가는 여운을 품은 ‘이브몽땅’의 그윽한 샹송 같기도 했다.
사람에게 추억은, 기억은 유독 유년시절에 강렬하게 머물고 있는 것일까!
그 고독의 순간에 몸부림치다, 길을 떠나는 헤밍웨이의 ‘골드문트’처럼 우리는 또 다른 탈출을 꿈꾼다. 하지만 긴 길을 돌아 다시 ‘나르치스’에게 돌아 올 것을 알기에 이 여행은 기억에 추억을 더하는 꼬맹이들의 신나는 여름방학일 것이다.
수십 년의 세월동안 각기 다른 삶과 항로를 통해 불쑥 자라 버린 꼬맹이들이 다시 가을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이른 아침 모여든 꼬맹이들은 바람을 가르며 먼 길을 내쳐 달린다는 이유만으로 벌써 한껏 고무된다.
여행은 이미 출발 전부터 시작된 셈이다.하루의 소풍을 받아든 전날처럼, 설렘은 한 밤을 가득 수놓는다. 소풍날이면 유독 비가 온다는 낭패스런 이야기도, 화창하게 맑은 날이기를 바라는 기도인 셈이다. 소풍날 비가 온 날들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유독 비가 온 소풍날이 기억되고 이를 피하고픈 간절함은 일상의 나른함에 대한 보상일지도 모른다.
여행은 이미 시작 전부터 마음을 무장해제 시킨다. 일상에서 쫓기듯 살던 우리의 삶을 아무 일 없다는, 그 하나만으로 충분하기도 하다. 나에게 있는 여러 모양의 일들을 일순간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여행은 평안을 허락한 것이다.
느린 통일호 열차에 몸을 싣고 창밖을 내다보던 일들이 얼마나 그리운 것인가! 집으로 돌아갈 때, 간혹 완행버스를 이용하는 이유도 여행이 주는 느림의 여유가 아쉬운 까닭이다. 모든 것이 고속화되어 버린 현실에서 느림이 주는 여유가 못내 아쉬울 때가 있다.
여행은 어린 시절 받아 든 소풍넉넉한 시간 안에서 열차의 움직임이 막 시작될 즈음, 엔진의 힘찬 소리에 심장도 따라 뛰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차창 밖으로 스치는 시골의 풍경은 아늑한 옛날의 일들이 가슴 안으로 파고든다. 막 추수를 끝낸 논은 여름내 고생한 농부에게 풍요로움을 허락하고서야 속을 훤히 내 보인다. 굴뚝마다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하얀 연기는 못다 한 꿈처럼 스멀스멀 사라지고, 놀이에 지친 아이들이 하나 둘 집이로 찾아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포근한 집이 그립다. 허락되지 않은, 삶의 안식처 같은 어떤 신기루를 찾는 나그네처럼 그렇게 일상에서의 탈출을 위해 여행을 갈망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여 주인공 ‘제니 카린’처럼 때로는 집이 아프기도 하다.
까칠녀들에게 이 여행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꼬맹이 시절에 만나, 사춘기를 거치고 중년에 다다르기까지의 인생을 함께 향유한다는 것.
각자의 유년 시절을 공유하고 소녀에서 여인으로 살아오는 과정의 인생역로일 것이다. 때로는 기쁨을 공유했겠지만, 삶에서의 어떤 아픔들을 견디어냈다는 대견함일 것이다.
긴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꿈꾸던 시절에서 중년에 다다른 지금까지의 삶은 어떠할까? 이웃에 사는 작은 계집아이와 책가방을 둘러매고 시골길을 총총히 거닐었던 때. 운동장 한 켠에서 훼방꾼들을 만나기 전까지 노래하며 뛰어 놀던 고무줄놀이. 깔깔대며 꿈꾸던 그 시절은 한 낮의 달콤한 꿈처럼 곁을 스쳐 멀리 달아나고, 때로는 가슴 아련한 슬픔도 한 가득 머금기도 했을 터다.
소녀에서 여인으로 살아오는 동안, 삶은 저절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내는 것’임을 증명해 냈을 터이다. 인생의 주체를 타인에 의해 지배받기도 하고, 생각지 않은 역주행도 결국 아픈 ‘옹이’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여자로서의 삶은 때로는 이해받지 못하는 아픈 혼자만의 굴레일수 있다. 하지만 깔깔대던 꼬맹이들이 함께 인생을, 그것도 여자로서 동반한다는 것은 동지적 의미를 한층 부여하기도 한다.
이러한 여자의 내면을 작가 은희경은 ‘아내의 상자’라는 단편소설로 묘사하기도 했다. 98년도 이상 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어느 날 사라진 아내의 빈자리에서부터 시작한다. 어디 가까운 곳에 갔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루, 이틀 지나며 아내의 주변인들을 찾는다. 하지만 자신이 아는 아내의 친구나 주변 인물들의 한계에 부딪히고 무심했던 날들을 되돌아본다.
아내는 그저 집에서 자신이 돌아오는 시간에 맞추어 일정을 소화하는 그런 사람이다. 아이들에게는 물론, 자신과 가정을 위해 일하는 부속물에 지나지 않는다.
주인공은 그동안 아내가 자주 들어가 혼자 멀쑥하니 있던 작은 방에 들어선다. 아내만 출입해야 하는 어떤 비밀의 방 같아, 호기심과 주인 몰래 침입하는 죄의식에서 떨리기까지 한다. 엄청난 비밀을 간직했을 것 같은 아내의 방에는 그다지 눈에 띄는 물건이나 숨겨진 비밀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온갖 이상한 상상마저 가져왔던 주인공에게 가지런히 쌓여져 있는 상자들만이 보인다.
조심스럽게 열어본 상자들은 아내의 추억들과 기억들을 하나씩 정리, 구별해 놓은 것 들이다. 불쑥 자란 모습의 아내만을 보아왔던 주인공은 낮선 유년시절의 모습들과 마주한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시간, 고독과 사투했던 아내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런 아내에게는 자신만의 긴 여행이 필요했을 것이다. 정제된 하루 속에서 자신은 사라지고 쓸쓸함과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날들이다. 늪처럼 자신을 조여 오는 지친 삶은, 죽을 것만 같은 공포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 공포로부터 아내는 여행이라는 탈출을 시도한 것이다.
혼자의 여행이 아니라는 이유로 벌써 신난다.
자연이 은은하게 내어 놓는 향기에 취해특히 오래된 꼬맹이들이 불쑥 자란 모습으로, 함께 삶을 공유했다는 이유만으로 이 여행이 기대되는 이유다. 이른 아침, 총총히 모여 내쳐 달리는 도로는 등굣길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그 모습과 닮아있다. 코스모스가 바람에 스치고 길가에는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가방을 들고 걸어가기도 한다. 회수권을 쥐어 든 아이들이 버스를 기다리기도 하는 인천 작은 마을 풍경 속으로 자전거 무리들이 폭주족처럼 뒤에 가방을 매달고 달리는 것이다.
인광중학교에서 심곡동으로 오는 길처럼, 여행길 도로 주변은 어느 새 그 옛날로 돌아가 있다.
각 지방의 산해진미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대충 끓여 먹은 라면이 기억에 남는 것은 함께 한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핵가족 시대를 지나 온, 우리네가 어느덧 고속화로 치닫는 사회현상의 아픈 단면인 ‘히키꼬모리’화 된 것도 공동체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그래서 무엇을 먹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고통도 순화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삶의 경험으로 터득한 까닭이다. 가난이 일상화되었던 어린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부엌에서 뜯어 넣었던 수제비는 상상만으로 그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옛 시절을 음미하는 경건의 의식일 때도 있다. 함께 삶을 향유했던 그리운 얼굴들을 불러내기도 한다.
심곡동 집 주변은 평지가 넉넉한 산이다.
가을이 깊어가고 낙엽들이 쌓이기 시작하면 산 깊은 곳으로 드나드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자연이 뿜어내는 냄새들이 그토록 그리울 때가 있다.
자연의 냄새는 각기 독특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뿜어내는 냄새는 흉내 낼 수없는, 그리고 한 때만을 허락한 향기다. 그 향기의 향연이 이번 여행에서 펼쳐지기도 했다. 웅장한 은행나무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비한 냄새는 흙과 나무와 막 떨어져 밀알이 되기 시작한 나뭇잎 등이 어우러지면서 부터다.
그리고 장작이 타면서 허공으로 흩뿌려지는 연기와 그로 인한 냄새는 ‘옹이’마저도 미치도록 그리운 것이 되고 만다. 특히, 여행지에서 군것질처럼 만나는 감자떡이며 군밤 등은 우리를 완전한 어린 시절로 내려 보낸다. 이제는 불쑥 자라 커피의 깊은 향에 도취해 있으니, 이 또한 세월의 무상함일 것이다.
“여행에도 돌아오고 나면, 다니던 곳이 새록새록 생각난다”는 이번 한 여행자의 말처럼, 이 찰나의 시간도 훗날 미치도록 그리운 과거가 될 것이다.
인천에 모여 강원에 홍천, 그리고 은행나무 숲. 또 다시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산정호수에서 허브아일랜드를 거쳐 경기도 연천을 빙점으로 돌아오는 긴 여행이다. 1박 2일을 긴박하게 돌아치고도 못내 아쉬워 “더 놀자”를 외치고 나오기도 했다.
한 범죄 심리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문을 통해 알 수 없는 공간에 들어서고, 또 알 수 없는 문을 통해 밖으로 나온다”고 했다. 이때 “공간에 알 수 없는 무언가는 놓고, 무언가는 가지고 나온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 무엇을 놓고 무엇을 가지고 왔을까?
공간에 놓아야 하는 것은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잃어버려야 하는 것이라면 아픔이고 상처, 고독일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도 우리를 더 단련하는 버팀목이고, 지금의 우리가 있게 한 성장통이다. 차라리 가슴 한 곳에 자리한 어떤 슬픔 하나를 그 곳에 살며시 내려놓자.
그리운 날에 "얘들아 놀자~
"그리고 아름답게 살아갈 지혜와 사랑을 마음에 그윽하게 담아내자. 이 여행을 통해 우리는 나른한 일상에서의 탈출을 꿈꾸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짧은 시간동안 함께 한 이들이 오랜 세월을 겪어 온 ‘친구’라는 사실이다. 중년의 나이로 불쑥 나타난 친구들이지만 여전히 그 시절의 해맑은 모습일 뿐이다.
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이 순간들이 속속들이 그리울 것이다. 그 옛날 유년 시절의 신작로와 개울, 산과 들. 그리고 기억하는 모든 것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리움이 사목사목 가슴에 올라오면 그 전처럼 애들을 불러 보겠지. 책가방을 휙 마루에 집어 던지고 바쁘게 동네를 돌며 목청껏 친구들의 이름을 부를 테지. 그러면 그때의 해맑은 얼굴과 호기심 가득한 모습으로 하나, 둘 모여들고 신명나는 놀이를 생각하며 한껏 부풀어 오를 것이다.
“얘들아, 노올자~”.
신수미 기자 shinmi@medisk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