汽車를 기다리며/찬양희
◈汽車를 기다리며 / 천양희
기차를 기다려보니 알겠다
기다린다는 것이 얼마나 긴 길인지
얼마나 서러운 평생의 평행선인지
기차를 기다려보니 알겠다
기차역은 또 얼마나 긴 기차를 밀었는지
철길은 저렇게 기차를 견디느라 말이 없고
기차는 또 누구의 생에 시동을 걸었는지 덜컹거린다
기차를 기다려보니 알겠다
기차를 기다리는 일이
기차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며
쏘아버린 화살이며 내뱉은 말이
지나간 기차처럼 지나가버린다
기차는 영원한 디아스포라, 정처가 없다
기차를 기다려보니 알겠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기차역이 있는지
얼마나 많은 기차역을 지나간 기차인지
얼마나 많은 기차를 지나친 나였는지
한 번도 내 것인 적 없는 것들이여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지나간 기차가 나를 깨운다
기차를 기다리는 건
수없이 기차역을 뒤에 둔다는 것
한순간에 기적처럼 백년을 살아버리는 것
기차를 기다려보니 알겠다
기차도 기차역을 지나치기 쉽다는 걸
기차역에 머물기도 쉽지 않다는 걸

천양희 시인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마음의 수수밭』『오래된 골목』『새벽에 생각하다』등이 있음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 만해문학상 등 수상
예술원 회원
기차를 기다려 본 사람은 안다. 기차역에 서 있으면 인생을 생각하게 된다는 걸.
정차했다 떠나는 무심한 기차들을 보면 마치 우리네 인생 같다. 한 번 떠난 기차는
절대 뒷걸음질 치지 못한다는 사실도 인생과 똑닮았다. 기차역에는 사연도 많다.
우리는 기차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이별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기차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인생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기차는 인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