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6살때였습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밤이였는데 아버지는 글이쓰고 싶으셨는지 저녁을 먹고나서 얼마 지나지않아 아버지가 방에 상을 가지고 오라 하셨습니다. 책상이 없었던 아버지는 밥상을 책상으로 쓰셨습니다. 어머니는 행주로 밥상을 잘 딱아서 갖다 놓았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책상에 원고지를 갖다놓고 연필을 깎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나에게 세살 된 여동생을 등에 업히라 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불같은 포대기를 덮고 "내옆집에 가서 놀다올께"하고 나가셨습니다.
나는 글 쓰는 아버지 등뒤에 붙어 있다가 잠이 들었죠 얼마를 잦는지 알수 없었습니다 누가 나를 깨워서 눈을 떠보니까 아버지 였습니다. 통금시간이 다 되어도 어머니가 아직 오지 않았으니 나가서 어머니를 좀 찾아 오느라 나는 자던눈을 손으로 비비며 털모자를 쓰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밖에는 무릎 높이까지 눈이쌓였고 하늘에서는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집 저집 어머니를 찾아 다녔지만 찾지를 못했습니다.
지치기도하고, 귀찮기도 해서 집으로 돌아 오려다가 갑자기 생각이났습니다. 어머니와 제일 친한 아주머니가 아랫동내에 살고 계셨습니다. 그 집에 한 번만 더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골목길로 들어서는데 전봇대가 있고 그 전봇대 옆에 나보다 더 큰 눈사람이 있었습니다 나는 아무생각없이 눈사람 곁을 스쳐 지나가는데 뒤에서 누가"동규야~"하고 불렀습니다. 보니까 어머니 였습니다. 어머니는 눈을 철철 맞으며 보자기를 머리에 쓰고 있었는데 보자기를 들추면서 너 어디가니?하고 물었습니다
나는 볼멘소리로 어머니를 찾아오라고 해서 아랫동내 아줌마 집에 가는중이라 이야기를 했습니다. 갑자기 내귀에다 입을대고 물었다 "네 아버지 글다썼니?" 나는 고개만 까딱 거렸습니다 어머니는 내등을 밀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나는 이사건을 평생 잊지 못하고 삽니다. 세월이 갈수록 내 머리속엔 몇 시간씩이나 눈 구덩이에 서서 눈을 맞으며 세살된 딸을 업고 계시던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세살된 내 여동생이 아버지가 시를 쓸때 울어서 방해가 될까봐 그렇게 어머니는 나와서 눈을맞고 서 계셨던 겁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직장을 다닐 즈음에 조금 철이 들어서 어머니에게 한번 물었습니다. "엄마 그때 얼마나 힘들었어? 돈도 많이 벌어오지도 못하고. 그런데 어머니는 뭐가 좋아서 밖에 나가서 일도하고 힘들게 고생 하면서 애를 업고 있었어?" 나는 어머니가 우리집 생활을 끌고 가는것이 안타까운 마음에서 물어본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웃으면서 "그래도 니 아버지는 밤에 그렇게 시를 다 쓰고
나면 발표하기 전에 제일먼저 나보고 읽어보라고 해? 하고 웃으셨습니다.
어머니가 아버지와 살아가면서 힘든 일을 겪어가면서 시인으로 살아가는 아버지를 이해 하는것은 바로 "시 한편을 읽어보라"하는 아버지의 배려의 힘이였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살아가는것은 이런 배려를 통해서 서로 사람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