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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심은 태양처럼 밝은 것”/이찬구 박사

밝은여명 2022. 8. 18. 11:52

 

◈천부경 연구 30년 “인간의 본심은 태양처럼 밝은 것”/이찬구 박사

“어느날 갑자기 다리가 아픈 거예요. 그래서 ‘왜 이렇게 다리가 아프지’ 하고 있으면, 조금 있다가 다리 아픈 사람이 찾아오는 겁니다. 그래서 살펴보면 그 사람이 아픈 곳이 내가 아팠던 곳하고 정확하게 일치하는 거예요.” 
   
천부경(天符經·단군이 우주의 이치를 81자로 풀이했다는 가장 오래된 우리 민족의 경전)을 연구하는 이찬구(58·동양철학) 박사는 1998년 ‘100일 기도’를 했을 때의 경험을 이렇게 말했다. 
  

“그 정도는 뭐 신기하달 것도 없어요. 이런 공부를 하다 보면 누구나 몇 번씩은 겪는 건데….” 이 박사는 “머리가 아픈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랑 똑같이 내 머리가 아파지고, 가슴이 답답한 사람을 만나면 내 가슴이 답답해져서,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 말이 사실일까. 아리송한 얘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박사는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로, 그중에서 한 기운을 받아 나온 것이 사람”이라며 “본체에서 갈라져 나와 생활하다가 다시 본체로 돌아가기 때문에, 결국엔 모든 사람이 서로 통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태극(太極)과 무극(無極)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동양철학 1000년의 논쟁은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이라는 주돈이(1017~1073·중국 북송의 유학자, 호는 염계濂溪)의 말에서 비롯됩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주자학파와 양명학파(또는 육왕학파)로 나뉘기 때문입니다. 주자학파는 이 말을 ‘무극은 곧 태극’으로 해석해서 태극이 우주의 중심이 된다고 해석합니다. 반면 양명학파는 이와 달리 마음(무극)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봅니다.”
   
이 박사는 “태극이란 보이는 세계의 작용(조화로움)을 뜻하며, 무극이란 보이지 않는 세계의 작용(조화로움)을 뜻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성리학은 눈에 보이는 세계의 작용이 우선이라고 보는 입장이고, 양명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작용이 우선이라고 보는 입장이란 것이다. 그는 “이 논쟁이 무려 1000년간 지속돼 온 동양철학 최대의 담론이었다”고 설명했다.
   
“성리학이 지배했던 시기에는 무(無) 혹은 무극(無極)을 이야기하면 곧바로 사문난적(斯文亂賊·주자적 유교 교리를 다르게 해석했던 학자를 비난하기 위해 사용했던 말)으로 몰렸습니다. 목숨과 가문을 부지하기 힘들었죠. 조선시대는 선비들에게 극심한 정신적 탄압을 가했던 시기입니다. 성리학은 주역을 통해 천당의 원리를 설명해 줬지만, 기도를 하면 사문난적으로 몰았습니다.”
   
이 박사는 “그런데 이런 식으로 앞뒤를 따져서 가르는 것은 우리 민족의 철학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태극과 무극을 놓고 어느 것이 우선이냐를 따지는 것은 중국의 철학입니다. 우리가 우리 것을 놔두고, 중국 것을 받아들인 거죠. 그럼 우리 철학은 무엇인가. 우리는 중국과 달리, 태극과 무극의 조화를 살폈습니다. 이런 우리 민족의 우주관을 잘 설파해 주고 있는 것이 천부경입니다.”
   
이 박사는 천부경의 시작인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이란 구절을 언급했다. “여기서 일(一)은 보이는 세계, 즉 태극을 뜻합니다. 무(無)는 말 그대로 보이지 않는 세계, 무극이죠. 이 구절은 ‘보이는 세상(一)이 시작(始)됐다. 그런데 그것은 보이지 않는 세상(無)에서 시작(始)된 것이다’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다시 말해 ‘태극은 무극의 도움 없이는 창조할 수 없고, 무극은 태극이 있어야만 창조의 뜻을 구현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천부경은 이렇게 생겨난 태극이 천지인(天地人)이란 세 가지(三極)로 나뉘었다(析)고 했습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천지인이란 세 가지가 처음 생겨날 때는 모두 똑같은 수평적 관계였다는 부분입니다. 그렇지만 ‘나’라는 존재는 수평적 관계 아래 태어나면서 수직적 상하관계로 다시 정의됩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부모는 나와 똑같은 생명입니다. 하지만 ‘나’와의 관계를 따지면 수직적 관계를 갖게 되죠. 이것이 천부경의 인간관입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수직적인 이중적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박사는 “천부경의 정신을 개승한 동학에서는 ‘자식이라 할지라도 때리지 말라’고 가르친다”고 했다. “자식이 천(天), 다시 말해 하늘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하늘을 존중하듯 자식을, 나아가 다른 사람을 존중하라는 것이 천부경의 가르침”이란 것이다. 그는 “조선 말 무려 700만명 가까운 교인이 몰리면서 동학이 크게 융성할 수 있었던 배경엔 이 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성리학에 억눌려 있던 인간관이 새로운 우주관을 접하게 되면서 크게 폭발했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천부경의 위대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인간의 본심을 살펴 사람이 나아갈 길을 제시해 주는 데 있다”고 했다. “천부경은 사람의 본심에 대해 ‘본래 태양처럼 밝은 것(本心本太陽昻明)’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그렇게 밝을 때 비로소 천지와 하나 된 인간이라 할 수 있다(人中天地一)’고 했습니다. 이는 ‘사람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하는 철학적 문제에 대한 대답입니다. 사람이란 태양처럼 밝게 살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천지와 하나(一)가 됨으로써 바르게(中) 살 수 있다는 것이지요. 여기에 나타난 ‘인중(人中)사상’이 한국 고유 사상의 핵심입니다.”
   
올해로 30년째 천부경을 연구하고 있는 이찬구 박사는 1983년 아산(亞山) 김병호 선생으로부터 처음 천부경을 받았다고 한다. 아산은 주역의 최고 대가로 꼽히는 야산(也山) 이달(李達) 선생의 제자. 그는 1984년 세상을 떠나기 전, 야산의 문하에서 함께 수학했던 대산(大山) 김석진 선생을 이 박사에게 소개해 줬다고 한다. 
   
이 박사는 중산학회(重山學會)라는 주역 공부모임을 만들어 1985년부터 9년간 총무를 맡았다. 그러던 중 고려대 총장이었던 김준엽(1920~2012) 박사의 권유로 1992년 36세의 나이에 ‘늦깎이’로 대학원(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에 입학해 학문과 수도의 길을 병행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대학원 수료는 했지만 논문을 제출하지 못한 채 수년이 지났어요. 그러다 보니 학교는 잊은 채 대전에 있는 동학교단인 수운교에 들어가 탈속(脫俗)의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꿈에 팩스가 한 장 날아왔습니다. 종이가 스윽 미끄러져 나오는 장면이 지금도 생생한데…. 보니까 거기에 ‘학위논문을 제출하라’고 써 있는 것 아닙니까. 화들짝 놀라 성균관대에 알아보니 그해가 논문을 제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한이라고 하더군요. 너무나 놀랍고 신비로웠습니다. 돌아가신 스승께서 그런 메시지를 보내 주신 것이라 생각돼서 말이지요.”
   
이 박사는 “꿈을 꾼 이후 1년 동안 동학사상을 주제로 논문을 작성해, 대학원 수료 후 7년 만에 석사학위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후 학문에 매진해 2005년 대전대에서 ‘동학의 천도관 연구’라는 논문으로 동양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대 문자에도 관심이 깊은 이 박사는 3000년 전 중국에서 사용된 첨수도에 ‘돈’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해 “이것이 훈민정음 창제 시 옛 글자를 모방했다고 했던 그 고대한글”이라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이번엔 2500년 전 동아시아에서 사용된 명도전에 ‘놈’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 “한글의 기원이 최초 2500년 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했다. 이 박사는 관련 내용을 담은 책 ‘고조선의 명도전과 놈’을 3월 28일 출간했다. 그와 함께 천부경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lee2918@empal.com으로 연락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