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아침
팔십종수(八十種樹) 본문
◈팔십종수(八十種樹)
나이 팔십에 나무를 심다
박목월의 수필, '씨 뿌리기' 에 호주머니 안에 은행 열매나 호두를 넣고서
학교 빈터나 뒷산에 심는 노교수 이야기가 나온다.
이유를 묻자 빈터에 은행나무가 우거지면 좋을 것 같아서'라고 했다.
언제 열매가 달리는 것을 보겠느냐고 웃자! "누가 따면 어떤가?
다 사람들이 얻을 열매인데"하고 대답했다.
여러 해 만에 그 학교를 다시 찾았을 때, 키만큼 자란 은행나무와
제법 훤칠하게 자란 호두나무 를 보았다.
"예순에는 나무를 심지 않는다.(六十不種樹)"고 말한다. 심어봤자
그 열매나 재목은 못 보겠기에 하는 말이다.
송유(宋兪)가 70세 때 고희연(古稀宴) 을 했다.
귤(柑) 열매 선물을 받고, 그 씨를 거두어 심게 했다.
사람들이 속으로 웃었다.
그는 10년 뒤 귤 열매를 먹고도 10년을 더 살다 세상을 떴다.
황흠(黃欽)이 80세에 고향에 물러나 지낼 때 종을 시켜 밤나무를 심게 했다.
이웃 사람이 웃었다. "연세가 여든이 넘으셨는데 너무 늦은 것이 아닐까요?"
황흠이 대답했다."심심해서 그런 걸세!
자손에게 남겨 준대도 나쁠 건 없지 않은가?"
10년 뒤에도 황흠은 건강했고, 그때 심은 밤나무에 밤송이가 달렸다.
이웃을 불러 말했다.
"자네 이 밤맛 좀 보게나! 후손을 위해 한 일이 날 위한 것이 되어 버렸군..."
홍언필(洪彦弼)의 아내가 평양에 세 번 갔다. 어려서 평양감사였던
아버지 송질(宋軼)을 따라갔고, 두 번째는 남편을 따라 갔으며,
세 번째는 아들 홍섬(洪暹)을 따라갔다.
아내로 처음 갔을 때 장난삼아 감영에 배를 심었고,
두 번째 갔을 때는 그 열매를 따 먹었다.
세 번째는 재목으로 베어 다리를 만들어 놓고 돌아왔다.
세 이야기 모두 '송천필담 (松泉筆譚)' 에 나온다.
너무 늦은 때는 없다.
예순만 넘으면 노인 행세를 하며,공부도 놓고 일도 안 하고
그럭저럭 살다 죽을 날만 기다린다.
100세 시대에 이런 조로(早老)다짐은 좀 너무하다.
씨를 뿌리면 나무는 자란다.
설사 내가 그 열매를 못 딴들 어떠랴!
지금 시작하라! 나이는 없다. 모두가 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