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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산 전투(兜率山戰鬪)전적지에 가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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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산 전투(兜率山戰鬪)전적지에 가다.

밝은여명 2023. 5. 1. 15:02

◈도솔산 전투(兜率山戰鬪) 전적지에 가다.

도솔산 펀치볼지구 전투 전적비

◈도솔산 전투" 전적지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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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산 전투" 전적지에 가다. 제2중대 3소대장 이근식 소위( 해강 3기 예 해병 대령) '도솔산' 주변 지역(...

한국 해병대의 승전() 전투로서 24개의 목표고지를 점령하여 미국해병 제1사단장으로부터 “한국 해병대가 아니었다면 이 전략적 요충지를 수중에 넣지 못하였을 것이다”라는 극찬을 받은 전투이다. 도솔산 지역은 양구와 인제 사이의 태백산맥 중에서 가장 험준한 곳으로, 평균 해발고도가 1,000m 이상이고, 양양~철원을 삼각의 저변으로 하여 원산을 그 정점으로 하는 중동부의 삼각산악지구에서 가장 중심이 되므로 전략상의 가치 역시 컸다. 당시 대치하고 있던 북한군은 막강을 자랑하는 제5군단 예하의 제12사단이었다.

최초의 도솔산 일대에 대한 공격은 미국 해병사단이 담당하였는데, 많은 손실만을 내고 성공하지 못하여 한국군 해병사단에 인계되었다. 6월 4일 아침 8시를 기해 시작된 한국 해병 제1연대의 공격은 9일간의 격전 끝에 캔사스선(Kansas Line:북한군의 공격기도를 분쇄하고 방어에 유리한 지역을 설정한 주저항선으로서 임진강∼화천호∼양양을 잇는 선) 내의 15개 목표고지를 일단 점령하는 데 성공하고 다음 목표를 향해 계속 전진하였다.

 

공격기간 중 해병대의 손실도 북한군에 못지않게 컸는데, 이는 지형이 험난하여 공격에 난관이 많았고 특히 계속된 강우와 짙은 안개 항공 및 야포 지원이 제대로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략적 요충지를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 해병의 끈질긴 전투능력 때문이었다. 이후 제2단계 작전으로 옮아가 6월 19일 도솔산에 대한 마지막 야간공격으로 정상을 정복하였다. 그 후 도솔산전투는 해병대 7대 작전 중 하나로 꼽히게 되었고, ‘도솔산의 노래’라는 전투 군가()를 제작하여 그날의 승리와 기백을 선양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도솔산전투 [兜率山戰鬪]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도솔산은 강원 양구군 동면(東面) 팔랑리(八郞里)와 해안면(亥安面) 만대리(萬垈里)의 경계에 있는 1,148m 높이의 산이다. 북서쪽의 대우산(大愚山), 동쪽의 수리봉, 남동쪽의 대암산(大巖山), 북쪽의 가칠봉(加七峰) 등과 함께 태백산맥(太白山脈)에 솟아 있는 고봉이다.

 

산의 북동 사면에서는 소양강(昭陽江)의 상류부가, 남서 사면에서는 파로호(破虜湖)로 흘러드는 북한강(北漢江) 상류의 서천(西川)이, 북서 사면에서는 북한강의 지류인 수입천(水入川)이 각각 발원한다. 산의 동쪽 기슭에는 소양강이 남북으로 흘러내리고 있으며, 약 7.5 km 북쪽을 군사분계선이 통과한다. 북동쪽 기슭에는 만대리를 중심으로 산간분지가 전개되어 논농사가 이루어지며, 남서쪽 기슭에는 서천 골짜기를 따라 팔랑리·원당리(元塘里)·후곡리(後谷里)를 중심으로 한 일대에 산간분지가 발달되어 있다.

 

캔자스선은 UN군이 설정한 38도선에서 북쪽으로 16~22㎞ 지점에 설정된 선이다. 1950년 12월 교통사고로 순직한 윌튼 워커 중장 후임으로 미 8군 사령관에 부임한 매튜 리지웨이 중장이 1951년 3월 말 설정한 방어선으로 임진강~화천~양양까지 이어지는 선이다. 리지웨이 장군은 전선에 38선에서 고착될 것에 대비해 캔자스 라인을 방어 거점 확보 지역으로 설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