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아침
세시와 다섯시 사이.. 본문
♡세시와 다섯시 사이..
내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와 있다.
내인생의 열두시에서
한시 사이도 치열하였으나
그 뒤편도 벌레먹은 자국이 많았다.
어두워지기 전까지
아직 몇 시간이 남아있다는 것이
고맙고,해가 다 저물기 전
구름을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
한번은 허락하시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쁘다.
아직도 내게는 몇 시간이 남아있다
지금은 세시에서 다섯시사이..
내 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와 있다.
- 도종환 -
♥바닷가에 대하여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잠자는 지구의 고요한 숨소리를 듣고 싶을 때
지구 위를 걸어가는 새들의 작은 발소리를 듣고 싶을 때
새들과 함께 수평선 위로 걸어가고 싶을 때
친구를 위해 내 목숨을 버리지 못했을 때
서럽게 우는 어머니를 껴안고 함께 울었을 때
모내기가 끝난 무논의 저수지 둑 위에서
자살한 어머니의 고무신 한 짝을 발견했을 때
바다의 뜬 보름달을 향해 촛불을 켜놓고 하염없이
두 손 모아 절을 하고 싶을 때
바닷가 기슭으로만 기슭으로만 끝없이 달려가고 싶을 때
누구나 자기만의 바닷가가 하나씩 있으면 좋다
자기만의 바닷가로 달려가 쓰러지는 게 좋다
(정호승·시인, 1950-)
♥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나무를 보면 나무를 닮고
모두 자신이 바라보는 걸 닮아간다
멀어져서 아득하고 아름다운 너는
흰 셔츠처럼 펄럭이지
바람에 펄럭이는 것들을 보면
가슴이 아파서
내 눈 속의 새들이 아우성친다
너도 나를 그리워할까
분홍빛 부드러운 네 손이 다가와
돌려가는 추억의 영사기
이토록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았구나
사라진 시간 사라진 사람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해를 보면 해를 닮고
너를 보면 쓸쓸한 바다를 닮는다
(신현림·시인,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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