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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적시는 사랑이 있다.

밝은여명 2023. 5. 25. 18:39

◈가슴을 적시는 사랑이 있다. 

 

겨울이 머물러 있는 마을에 금실이 좋은 노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밭에 일하러 가는 할아버지 등 뒤에는 지게가 아닌 할머니가 업혀져 있었다. 

“임자, 밖에 나오니 춥지 않아?”, “영감 등이 따뜻하니까 춥지 않네요” 

앞을 못 보는 할머니를 업고 다니는 할아버지는 “임자, 여기서 앉아 쉬고 있어. 밭에 씨 좀 뿌리고 올 테니” 씨앗 한 움큼을 던져 놓고 할머니 한번 쳐다보고는 “초가삼간 집을 짓는 내 고향 정든 땅” 구성진 노래까지 불러주고 있는 모습에 할머니가 손뼉을 치며 따라 부른다. 

하늘을 나는 까치도 나뭇가지의 참새들도 장단을 맞추고 있는 걸 보는 할아버지 눈가는 어느새 촉촉이 젖어오고 있었다. 나만 볼 수 있는 게 미안하다며 눈물짓고 있는 할아버지는 봄에 씨앗을 심고 키워서 가을에 곡식을 줍던 행복한 날들을 뒤로하고 겨울 같은 아픔을 맞이하고 있었다.

감기가 심해서 들린 읍내 의원에서 큰 병원으로 가 보라는 말에 할머니 몰래 진찰을 받고 나오는 할아버지는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할머니에게 말하지 않은 채 평소와 다름없이 산과 들로 함께 하지만 갈수록 할머니를 업기에도, 휠체어를 밀기에도, 힘에 부쳐 안간힘으로 버티어 내고 있었다.

마침내 작심하고 어느 날 평소와 달리 기쁜 듯이 할머니에게 말을 던진다.

“임자, 됐어 됐다구” 하는 말에 할머니는 “읍내에 갔다 오더니만 뭔 말이래요?” 하며 묻는다. “그동안 고생 많이 했어” 할멈에게 망막 기증을 해준다는 사람이 나섰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고 수술대에 누워있는 할머니에게 “임자, 수술 잘 되니까 걱정말아요” 

“그래요 이제 나란히 손잡고 걸어갑시다”라고 하는 할머니의 희망적인 말에 ‘다음에 저승에서 만나면 꼭 그렇게 하자’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할아버지가 떠나면서 남기고 간 선물로 눈을 뜨게 된 할머니는 앞에 펼쳐지는 세상이 너무나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더니 이내 할아버지를 찾는다. 

“임자, 이제 그 눈으로 오십 평생 못 본 세상 실컷 보고 천천히 오구려 세상 구경 끝나고 나 있는 곳으로 올 땐 포근한 당신 등으로 날 업어 떨어져 있었던 시간만큼 못다한 이야기나 해 주구려” 

비록 멀어졌지만 우린 세상을 함께 보고 있는 거라고…. 씌여진 편지를 잃고 난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있을 하늘을 향해 울부짖으며 당신의 등 뒤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가 더 행복했다고 이별의 아픔을 절절히 슬퍼하고 있었다.

 

1966년 민주공화당의 김종필 당의장의 주례로 패티김과 길옥윤이 워커힐 호텔에서 명성에 걸맞는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은 사랑하기에 부부가 되었지만 술 없이 살 수 없는 정도의 심한 길옥윤의 주벽(酒癖)으로 인해 갈등이 깊어져 일 년 반 정도 별거하기로 하고서 길옥윤은 뉴욕에서 지내고 있을 때 패티김을 생각하며 쓴 곡이 ‘이별’이다. 끝내 두 사람은 1973년 이혼을 하게 되었고 패티김은 이탈리아의 사업가와 재혼을 하였다. 결별한 길옥윤은 사업은 실패했어도 왕성한 작곡 활동을 하던 중 골수암 판정을 받고 시한적인 생명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패티김을 위해 쓴 이별의 노래를 패티김이 부르는 모습을 생전에 보고 싶다고 했다. 

최희준, 현미, 정훈희 등이 출연하는 지인들과 후배 음악인들이 마련한 길옥윤에게 바치는 콘서트가 드디어 SBS에서 열렸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랑했던 사람을 위해 패티김은 이탈리아에서 수천 마일을 날아와 진심 어린 마음으로 무대에 섰다. 고인(故人)이 패티김을 위해 작곡한 수많은 명곡을 시작으로 ‘초우’,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등 가슴을 후벼 파는 주옥같은 곡들로 청중들 사이엔 조용한 침묵이 흐르고 이어서 콘서트의 피날레 곡인 ‘이별’을 부르던 패티김의 맑은 눈이 어느새 붉어지면서 단상 밑 휠체어에 앉아 그녀를 바라보는 길옥윤의 눈빛에서도 연민의 정이 묻어나는 잔잔한 그리움으로 패티김을 직시하고 있었다. 

헤어진 지 21년 만에 재회하는 감동의 순간을 가슴에 안고서 병마를 이기지 못한 길옥윤은 콘서트가 끝난 후 얼마 되지 않아 68세의 일기(一期)로 세상과 영원한 이별을 하였다. 깨어진 사랑을 가슴 아프게 후해(後解)하면서 지금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독백을 ‘이별’이라는 이름으로 노래에 새겨놓고서 떠났다.

 

절세의 가인(佳人)도 천하의 영웅도 혼(魂)으로 주고받는 사랑과 우정이 없다면 삶의 기쁨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조선 중기에 진사(進士)의 딸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섭렵(涉獵)하고 시(詩), 서(書), 음(音), 률(律), 기(技) 등이 경지(境地)에 달하여 버금갈 자가 없었던 빼어난 미색(美色)마저 갖춘 *황진이가 당대의 걸인(傑人)들의 구애(求愛)의 대상이 되었음은 물론 궁실의 부름마저도 거절하게 된 것은 혼(魂)이 없는 사랑이 부귀영화(富貴榮華)에 갇혀 살아간들 아무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 대학자(大學者)인 서경덕(화담)을 찾아 비로소 사랑을 알고 덧없는 인생을 예술과 사랑, 자유를 추구하며 생애를 마친 그녀는 보기 드문 기인(奇人)이었다고 생각된다. 깊음이 없는 사랑은 향기도 아름다움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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